충주이야기
홈 >
더 가까이, 충주 >
미디어충주 >
충주이야기
총 게시물 33 개,
페이지 1 / 4
-
이천 년 옛길 ‘충주 하늘재’ 문헌상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로 통하는 충주 하늘재!
156년(신라 아달라왕 3년)에 길이 열렸으니 2천 년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옛길이다. 고구려 온달장군이 이곳을 지키려고 목숨을 바쳤고,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몽진한 피난길이기도 했다. 마이태자, 덕주공주 전설이 깃든 북향 사찰 미륵대원지에서는 거대한 미륵불과 석탑을 볼 수 있다.
하늘재를 사이에 두고 충청도 미륵리는 ‘내세(來世)’를, 경상도 관음리는 ‘현세(... 2021.01.28 -
충주(忠州)의 이름으로 1,080년 충주시는 일찍이 충청도의 수부(감영) 도시였고, 지금은 발전과 변화를 꾀하는 중부내륙권 신산업도시이다.
고구려 장수왕 63년(475)에 나라의 으뜸이라고 국원(國原)으로 불렸고,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제2의 서울로서 나라의 중앙이라는 중원(中原)으로 불렸다.
지금의 명칭인 충주(忠州)로 불리게 된 것은 고려 태조 23년(940)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1,080년 전이다, 충주 또한 한자를 풀어쓰면 ‘중심고을’로 국토의 중심을 의미한다. ... 2021.01.28 -
53℃ 수안보온천 수안보 온천수의 온도는 약 53℃로 뜨겁다. 하루 평균 700t을 용출하는 약알카리성(pH 8.6) 단순유황 라듐 온천으로 수질은 국내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온천수에 불소가 함유되어 있어 충치예방에 좋으며, 피부병·위장병·부인병·신경통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충주시에서 20km 거리의 준고랭지에 자리잡은 수안보온천은 태초부터 존재했으나 기록상으로는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1,000년 전부터 알려졌던 것 �... 2020.08.04 -
충주의 대표적인 향토지 ‘예성춘추(蘂城春秋)’ 『예성춘추』는 중원군수를 지낸 김상현이 1958년 충주의 역사 및 문화 등을 기록하고 1959년 출간한 대표적인 향토지이다.
충주에 관한 책으로는 1890년대 『충주군읍지(忠州君邑誌)』와 일제강점기 때인 1915년 『최근지충주』, 1931년 『충주관찰지』, 1933년 『충주발전사』, 『충주발전지』 등이 나온 적이 있으나 해방 이후에는 『예성춘추』가 처음이다. 이후 충주의 역사서는 보릿고개를 지나고 먹고살기가 괜찮아진 1970년대가 되어서야 나... 2020.08.04 -
첫 승리를 불러온 김재옥 선생 김재옥 교사는 1931년 3월 12일 충북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서 출생했다. 1946년 상평초등학교, 1949년 음성여자중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5월 충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한 달 뒤인 6월 20일에 충주 동락 초등학교로 부임했다.
부임한 지 5일 만에 6·25전쟁이 일어나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지만 김 교사는 학생들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 학교에 남아 있었다. 북한군은 남침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계속 남하하여 7월 5일에는 충청북도 음성군 무... 2020.07.03 -
택견 인간문화재 신한승 선생 택견 인간문화재 신한승(1928~1987, 초대 예능보유자) 선생은 서울시 하왕십리에서 태어나 13세부터 조부인 신재영으로부터 택견을 배웠다. 충주로 이사하여 정착하면서 택견 고수인 송덕기(1893~1987, 초대 예능보유자) 선생과 서로의 기능을 겨루며 익혔다.
택견은 고구려시대부터 시작되어 신라시대에는 화랑도의 근간이 되었고, 고려시대에는 호국 무예로서 무과 시제의 정규 과목이 될 정도로 국가 차원에서 장려했던 무예였다. 일제강점기에... 2020.07.03 -
감자꽃 시인 권태응 선생 권태응(1918~1951) 선생은 시인이자 항일운동가이다. 본관은 안동이고 충주시 칠금동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어려서는 할아버지한테 한문을 배웠고 문학은 물론 운동과 음악을 좋아했다. 1932년 충주공립보통학교(현 교현초교). 1937년 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전문부 문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일본인들의 부당한 행위에 저항심으로 재일유학생을 규합하여 독서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하다가 일... 2020.07.03 -
여성독립운동가 어윤희 선생 여성독립운동가 어윤희(1881.6~1961.11) 선생은 1878년 소태면 오량리에서 어현중의 딸로 태어났다. 1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1894년 결혼하여 3일 만에 남편이 동학군으로 나가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자 10여 년간 평산, 해주 등지를 전전했다.
이후 1909년 개성에 정착한 선생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정춘수의 설교에 감명받아 기독교에 입문해 애국계몽운동가로 활동했다.
1919년 3ㆍ1운동이 지방으로 확산하자 당시 개성의 여자성경... 2020.06.19 -
근대건축물 성공회 충주교회 성공회 충주교회에는 1924년 세워진 오래된 목조건물이 남아 있다. 충주지역 최초의 성공회 교회로 성 베네딕을 수호성인으로 첫 번째 성당을 축성하였으며 아치형의 아름다운 창문을 가진 100년의 근대건축미를 자랑한다.
건물 앞에는 1924년 충주읍 17명, 산척면 명서리 20명의 신자들이 설립한 교회라는 충주교회의 역사가 적힌 비석이 서 있다.
성공회는 1534년 로마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되어 영국교회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에는 1889년... 2020.06.19 -
충주비료공장 요소제립탑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옛 충주비료공장(현재 코스모신소재 입주)이 있던 충주시 목행동 1번지에 가면 50m 높이로 눈에 확 들어오는 전망대가 있다. 바로 우리나라 공업발전의 상징으로 통하는 충주비료 요소제립탑이다.
이 요소탑은 80년대 초 충주비료공장은 폐쇄되면서 한때 이 건물을 해체될 뻔 했으나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한국근대화와 공업발전의 상징이었던 만큼 충비의 기념물을 보존해달라는 지역주민들의 요구로 내부만 비우... 2020.06.15
![유형 및 이용허락의 범위 : [제4유형] 출처 표시](/common/images/ggnuri/img_opentype04.jpg)
유형 및 이용허락의 범위 : [제4유형] 출처 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