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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명(민족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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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명 사진1

유자명

  • 시대 :근대
  • 출생사망 :1894~1985

인물소개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유자명은 1919년 3월1일 당시 충주간이농업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학생 중심의 시위를 준비하다가 사전에 탐지되어 상해로 망명하였다.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의정원 충청도 대표의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는 한편, 나석주(羅錫疇)의 소개로 김원봉(金元鳳)이 주도하던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면서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
1937년 12월 김원봉과 함께 '조선민족전선연맹'을 창립하고 민족통일전선을 주장했다. 1938년 무한(武漢)에서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용대'가 발족했을 때에 이를 지도했으며 계림(桂林)까지 종군하였다. 1939년 중경으로 이동하여 임시정부와 김원봉이 이끄는 세력을 항일전선으로 결집시키는 연합을 주선하였다.

1942년에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약헌개정기초위원(約憲改正起草委員)을 역임하였으며 1943년 3월에는 임시정부 학무부 차장에 임명되었다. 광복될 때까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서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광복 후 한국전쟁 때문에 귀국을 포기하고 이후 중국에서 농학자로서의 길을 걸었다. 선생은 애국투사일 뿐 아니라 저명한 교육가였고 농학전문가였다. 1950년부터 30여 년간 대학의 저명한 농학교수로 그리고 교육가로 활약하여 중국정부와 학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1968년에 대한민국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며, 197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3급 국기훈장을 받았다. 사후 1991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담당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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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예술과
  • 전화번호 043-850-5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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