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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대 문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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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 사진1

강수

  • 시대 :삼국시대
  • 출생사망 :미상

인물소개

『삼국사기』에 강수는 중원 사량 사람이라고 전한다. 중원경은 오늘의 충주로 신라 삼국을 통일한 후에 붙여진 이름이다. 강수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외교문서를 효율적으로 다뤄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어머니가 꿈에 머리에 뿔이 난 사람을 보고 임신하였는데, 그가 태어났을 때 보통 사람과 달리 뒷머리의 뼈가 높이 솟아 있었다고 한다.

태종 무열왕이 강수의 이름을 물었을 때 ‘우두(牛頭)’라고 답하자, 태종무열왕은 강수의 머리를 보고는 “강수(强首)라 부를 만하다.”고 하고 강수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무열왕 즉위년에 당나라의 사신이 가져온 어려운 내용의 외교문서를 완벽하게 풀이하고, 뛰어난 문장력으로 당나라 황제에게 보내는 답서를 작성함으로써 학식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 뒤 당나라, 고구려, 백제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전담하게 되었고, 당나라에 원병을 청할 때도 외교문서를 작성하였다.

재물에 뜻을 두지 않아 가난하게 지내므로 무열왕이 해마다 조 1백 석을 하사하였다. 통일된 이후 그 공을 인정받아 문무왕으로부터 사찬(沙飡)의 관등과 아울러 녹봉도 해마다 2백 석을 더 받게 되었다. 그는 부모가 양가의 규수에게 장가들게 하려고 하자, 이미 신분이 낮은 대장간집 딸과의 관계를 들어 양가의 규수와 결혼하지 않았다. 이는 강수가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에 출세보다 유교적 윤리의식에 충실한 도덕적 실천가였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담당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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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예술과 남금자
  • 전화번호 043-850-5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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