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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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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지

남산성

남산성 사진

충주시 직동 산 32번지 해발 636m의 정상에 위치한 성은 일명 남산성, 금봉산성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충주 동쪽의 계명산 영액과 서쪽의 대림산성 북쪽의 탄금대 토성지와 함께 충주를 사방에서 방어하기 위하여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이다.
이 산성은 백제 구이신왕 시대(420 ~ 426년)에 쌓은 것으로 전해지며 국성으로 불리다가 백제 개로왕 21년(475)에는 백제의 도읍지를 충주로 천도할 목적으로 옮기려다 개로왕의 죽음으로 도읍지의 흔적만 남기고 있다.(성의 둘레 1,145m)

대림산

충주시 호암동과 살미면 향산리에 걸쳐있으며 대림산의 봉우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축 봉수대 터이다. 남쪽으로 주정산 봉수에 연결해 주고 서쪽으로 이류면 마산에 연결하여 주었다. 이곳에도 별장 1명 감관 5명 군인(봉군) 100명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지금은 약 30평 정도의 평지에 터만 남아있다.

석종사

  • 소재지 : 직동 148-2번지
  • 충주시 직동에 소재한 절터로 옛날 죽정사 절터임.
  • 죽림이 울창하여 봉황이 서식했다하여 산명을 금봉산이라 하였는데 절터에는 파괴된 3층 석탑만 남아있으며, 탑하대석 안상이 일면에 3개씩 양각으로 조각한 탑이다.
  • 조선말 고종때 충주목사 조병노가 지금 충주에 있는 청녕헌 등관아를 짓기 위하여 뜯어 갔다는 전설이 있음.

창룡사

  • 지정종별 : 충청북도 문화재 자료 재 56호
  • 충주시 직동에 소재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본사의 말사임. (도지정 기념물 제31호)
  • 금봉산 중턱에 자리잡은 창룡사는 신라 문무왕 당시 원효대사가 충주고을을 지나던 중 용이 여의주를 물고 흐롱하는 것을 보고 하염없이 쫒아가던 중 목이 말라 물을 마셨다는 곳으로. 꿈에서 깨어보니 그곳이 명당자리라 부처님을 모시고 창룡사라 함.
  • 고려말 뇌옹선사가 중창하였고 조선 선조때 팔도 도총섭인 서산대사가 주석하면서 산 이름을 남산이라 고쳐 부름.
  • 1870년 당시 충주목사 조병노가 여러 전각을 헐어 병사들의 거처인 수비청을 짓는 바람에 한 채로 명목을 유지해 오던중 1905년 청신녀 박씨의 원력으로 법당을 세웠으며, 1993년 당시 주지인 각원스님이 현재의 본당인 극락보전을 신축하였음.

유원지

호암지

호암지 사진

충주분지의 중심을 이루는 모시래들(일명 달천평야 또는 충주평야)의 젖샘인 호암지는 옛날에는 조그마한 연못이었으나 이제는 큰 못이라 부르던 함지 못이 작은 못으로 변하고 충주를 대표하는 큰 못으로 변하였다. 주변의 숲에는 곳곳에 휴식처가 있고 자연환경이 수려하여 휴일이나 평일 오후에 여가를 즐기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호암지 남쪽 숲에는 반공투사 위령탑이 우뚝 솟아 있다.

범바위 쉼터 및 산책로

인근 주민들의 휴식공간을 제공함으로서 주민들의 산책로 이용으로 주민 정서 함양 제공. 협소한 진흙길을 산뜻한 비포장 산책로로 조성 통행 편의 도모신규 조성 화단에 야생화 식재 자연의 소중함 인식 제공 최초의 비예산사업 실시 예산 절감 효과 열린공간의 산뜻한 조성으로 주민들의 칭송 산책로 1일 이용객 (약 200명), 쉼터 (100명)

담당자 정보

담당자 정보

  • 담당부서 호암.직동
  • 전화번호 043-850-2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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