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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현·안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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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지

충주향교

청령헌 사진
  • 관리주관 : 충주향교
  • 대 표 자 : 전교
  • 전 화 : (043)847-4454
  • 규 모 : 대성전 22평, 명륜당 18평, 동무 19평, 서무 19평, 동재 19평, 서재 20평, 치사제 16평

이 향교에서는 3성가 송조 4현 및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각각 봉안하고 매년 음력2월과 8월 상정일에 석전을 봉행하며 공부자(孔夫子) 탄강일에 기념행사도 거행한다.
이 충주향교는 1398년(조선조 태조 7)에 창건하였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29년(인조 7)에 현 위치에 이전, 재건하였다. 그 후 수차례 중·보수를 하여 1897(고종 34)에 교궁을 중건하였으며 1935년에 이르러 군수 전석영(全錫泳)이 명륜당을 증축하고 동시에 대성전과 동·서무를 중수하였다.

특기사항으로는 선조25년 임진왜란의 병화로 교궁이 소실될 때 증 가선대부 병조참판 석감(石鑑)과 증통정대부장예원 판결사 석천수(石天壽)가 위패를 계명산중을 옮겨 병화를 모면하였고 한다. 향교정문 서남방 50보쯤에 위치하고 있는 호성사(護聖祠)에 양공을 봉안하고 매년 춘추로 향사하고 있다. 이 향교는 지방유형 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었던 것을 1984년 12월 31일자로 충청북도기념물 47호로 지정 되었다.

향교의 의미
  • 향교는 학교다.
    향교는 지방의 학교라 할 수 있다. 물론 조선시대 때의 학교이기는 하나 그 설립의 固有 목적은 학교인 것이다. 따라서 儒林이 살아있는 한 향교는 학교이다.
  • 향교는 선현들의 얼을 모신 곳이다.
    향교에는 인류의 큰 스승인 孔夫子를 위시하여 중국과 한국의 위대한 성현들을 모시고 있다. 우리가 교육의 전당인 향교에서 선각들을 모시고 있는 진정한 뜻은 훌륭한 정신을 거울처럼 마주보고 교육의 지표로 삼으며, 내일의 조국을 열어 가고자 하는데 있다. 따라서 향교는 선조와 성현을 모시고 지역의 정신문화를 계도할 인재를 양성하는곳이라 정의할 수 있다.

석전대제

석전대제 사진1 석전대제 사진2 석전대제 사진3

석전(釋奠) 즉 석전대제(釋奠大祭)는 공자를 모신 사당인 문묘에서 음력 2월과 8월에 공자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서의 석전(釋奠)은 학교에서 옛날 성인과 훌륭한 스승을 추모하기 위하여 올리던 의식이었는데 한나라 이후 유교가 국교로 되면서 점차 공자를 석전(釋奠)의 대상으로 모시는 관례가 정착되었다.

석전제(釋奠祭)는 문묘에서 공자(孔子)를 비롯한 선성선형(先聖先賢)에게 제사지내는 의식을 일컫는다. 원래 '석(釋)'은 '놓다[舍]' 또는 '두다[置]'의 의미를 지닌 글자로서 '베풀다' 또는 '차려놓다'라는 뜻이다. 또한 '전(奠)'은 일종의 상형문자로서 '酋'와 '大'의 합성자이다.

여기에서 '酋'는 술병에 술을 담아 놓고 덮개를 덮어 놓은 형상으로, 빚은지 오래된 술을 의미하며, '大'는 물건을 얹어두는 받침대의 모습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는 곧 정성스레 빚은 술을 받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선성선현에 대한 제사의식인 석전이 예부터 학교에서 봉행되어 내려온 것은 유학의 독특한 성인관(聖人觀)에 기초한 것이라 할 수 잇다. 그것은 곧 '누구든지 배워서 성인이 될 수 있다' 는 의식이다.
유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성인은 태어날 때부터 그 그릇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 똑같이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지니고 태어난다. 이 같은 자질은 마치 씨앗과도 같은 것이어서 부지런히 배우고 노력하면 싹을 틔우고 결실을 맺어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그 씨앗은 싹도 제대로 틔우지 못하고 말라버려 오히려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깊은 신뢰를 표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인간의 주체적인 도덕적 실천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드러내주는 것으로서 유학의 중요한 전통으로 성립되어 장구한 세월에 걸쳐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그리고 바로 이 같은 유학의 독특한 성인관으로 인하여 배움의 장소인 학교에서 석전을 봉행하는 의식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석전은 성리학이 정착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에서 주관하는 오례(五禮) 중에서 길례(吉禮) 편에 속하는 국가적대사로서 봉행되었는데. 이처럼 당시 인재양성의 유일한 기관이었던 성균관의 문묘에서 봉행되는 석전을 국가적 대사로 규정한 것은 석전이 지니고 있는 교육적 의의에 대한 인식에 바탕한 것이었다. 한편 석전은 '정제(丁祭)' 또는 '상정제(上丁祭)'라는 별칭으로도 불리웠는데 이는 석전을 매년 봄과 가을에 걸쳐 2차례씩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을 택하여 봉행하여 온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사란 앞서간 전대(前代)의 훌륭했던 스승들을 일컫는 말이고, 선성이란 주대(周代)에는 요(堯) ㆍ순(舜)ㆍ우(禹)ㆍ탕(湯)ㆍ문왕(文王)을 일컫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漢)나라 이후 유교를 국교(國敎)로 받들게 되자 공자를 점차 선성선사의 자리로 올려 문묘의 주향(主享)으로 모시는 동 시에 석전으로 우러르는 관례가 정착되었다.
후한(後漢) 명제(明帝)같은 제왕은 주공(周公)을 선성, 공자를 선사로 삼아 공자의 고택을 찾아가 서 석전을 올리기도 하였다. 위(魏)ㆍ수(隋)ㆍ당(唐) 이후로는 대체로 공자를 선성, 안회(顔回) 를 선사로 받들어 석전을 올렸다.
특히 당태종 정관(貞觀) 4년(629)에는 각 주(州)의 현(縣)마다 공자묘를 세웠는데 당 현종(玄宗) 이 개원 27년(738)에 공자를 문선왕(文宣王)으로 추봉하였다. 공자가 승하하신 후 그의 옛집 곡부(曲阜)에 묘를 세우고 후제(後濟)에 이르러 태학의 가운데에 공 안(孔顔)의 묘(廟)를 두었다.

명(明)에 와서 태학의 문묘를 대성전(大聖殿)이라 일컬어 석전을 올리는 사당으로 확립되었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전래한 기록은 없지만 최초로 태학을 설립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으로 이때 석전도 함께 봉행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백제는 국립학교 설립의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오경 박사(五經博士)등의 명칭이 『삼국사기』에 나오고,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박사 아직기(阿 直岐), 왕인(王仁)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국립학교와 같은 기관에서 석전의식을 봉행했을 가능 성이 있다. 신라에서는 진덕여왕(眞德女王)2년(648)에 김춘추가 당에 건너가 국학(國學)을 찾아 석전의 의식을 참관하고 돌아온 후 국학 설립을 추진했고 신문왕2년(648)에 그 제도가 확립되었다.

성덕왕 16년(717)에는 태감(太監) 김수충(金守忠)이 당으로부터 공자와 그의 제자 중 학덕이 뛰어 난 10인의 철인(哲人) 및 72제자의 영정(影幀)을 가져와서 국학에 안치했다는 기록이 있어 석전의 식이 국학에서 봉행되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충주산성

충주산성 사진
  • 시 대 : 삼국시대
  • 유 형 : 산성
  • 지 정 : 지방기념물
  • 지정번호 : 지방기념물 제31호
  • 지정일자 : 1980. 1. 9
  • 소재지 : 충주시 직동 산 24-1

충주산성은 충주시 안림동 산56-1과 직동산 24-1 및 목벌동 산54에 걸쳐 있으며 남산성 또는 금봉산성으로 불리워 지기도 한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여지는 이 성은 외축 내착형이며 산 정상을 이어 쌓아진 테뫼식 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축성 재료는 석재를 고루 쌓아 전형적인 고식을 보이며 성 둘레는 83년 충주시 조사에 의하면 1,145m이며 중간 중간이 무너지고 5개소에 775m의 성곽이 남아 있으며 성안의 넓이는 46,524㎡이고 성벽의 높이는 7 ~ 8m에 이르고 있다. 성안에는 우물자리가 2개소 있는데 현재 물은 나지 않으며 동서의 산 능선상에 문터가 있고 동쪽으로 수구지가 있다. 또 성안에서는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편 및 기와쪽이 발견되고 있다.

충주산성은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몽고병을 물리친 곳으로 추정되며 고종 40년(1253) 9월 몽고가 제4차 침입을 감행하여 충주산성을 공격하자 충주 창정, 최수가 금당협에 매복하여 몽고군을 공격하여 승리하였고 같은 해 12월에는 포위당한지 70여일에 군량이 다하고 사기가 저하되자 방호별감, 승장, 김윤후가 전군과 관노까지를 격려하여 사력을 다해 싸워 적을 격

다음 해 2월에 김윤후를 감문위섭상장군으로 삼았고 4월에는 충주를 승격하여 국원경으로 하였다. 1254년 9월에는 차라대가 충주산성을 공격하였으나 갑자기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뿐 아니라 성안의 고려인이 열심히 싸우자 차라대도 물러갔다. 몽고의 침입을 받아 전 국토가 유린되었으나 충주산성은 끝내 수호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마고선녀가 7일만에 축성하였다고 하며 백제 개로왕 21년(475)에 축성하여 적을 방어하였다고도 한다. 개로왕이 바로 이 성 북쪽에 있는 안림동에 도읍을 옮기려 하였다는 설과 일치하고 있음에 주목된다. 1977년에 무너진 곳의 일부를 보수하였고 1986년도에 지방비 예산을 투입 충주공업전문대학 박물관 팀에 의하여 발굴 조사한 바 있다.

유원지

종댕이길

충주호 종댕이길은 계명산 줄기인 심항산을 휘감아 돌면서 충주호의 아름다운 풍경과 호수의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가족단위로 산책할 수 있도록 조성된 숲길로 11.5㎞로 대략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특히 우거진 숲과 다양한 식물등이 분포되어 있고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충주호의 아름다운 경관이 손에 잡힐 듯 함께하며 탐방할 수 있어 즐거움이 남다르고 더 없이 좋은 숲길이다.
“종댕이(宗堂)”라는 말은 근처의 상종·하종 마을의 옛 이름에서 비롯되었으며 심항산을 종댕이산이라고도 한다.

종댕이길 사진

계명산

산(해발 774M)은 충주시내 동북쪽에 '마즈막재'를 가운데 두고 북쪽에, 남쪽에 남산(해발 636M)으로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산으로 산위에 오르면 충주호반의 '일출 광경'은 물론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충주 조정지호에 비쳐지는 저녁노을은 운치를 더해 일찌감치 시민들과 특히 등산객들에게 '일몰명소'로 꼽혀왔다. 또 계명산 정상이 아니더라도 산행이 시작되는 '마즈막재'는 일출과 일몰의 장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계명산 휴양림

충주시 동쪽의 종민동에 우뚝 솟아있는 소백산맥의 지맥, 계명산(774m)의 북동쪽 산자락에 자리해 있는 "계명산 자연 휴양림"은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감동적인 풍광을 선사하는 곳이다. 이곳의 면적은 363ha이다. 이 자연 휴양림에서 발 아래로 펼쳐지는 시원한 쪽빛 충주호반은 다른 휴양림에서는 볼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계명산 자연 휴양림은 산막 또는 야영을 즐기려 찾는 곳이기 보다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잠시 들러 주변에 그림같이 펼쳐져 있는 풍광을 둘러보기 위해서 더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또한 충주호 유람선 관광 및 충주호 낚시터가 관광객에게 각광을 받고 있어서 산림과 호수에서 동시에 관광과 레저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곳의 최대 장점이다.

이곳은 하층식생으로 잡관목이 주로 생육하고 있으며, 남서쪽으로 주위경관이 양호한 수림대를 형성하고 있어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최적지며 또한, 휴양림내에는 통나무집이 있어 도심속에서 맛볼 수 없는 새로운 정취를 자아낸다.

충주 다목적댐

충주 다목적댐은 한반도의 중심부를 관류하는 남한강 수계에 건설된 국내 최대의 콘크리트 중력식 댐으로 남한강 유역이 보유하고 있는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하여 하류지역에 각종 용수를 공급하고 수력에너지를 생산하여 첨두전력수요에 대처하는 한편, 하류지역의 홍수피해를 경감시킬 목적으로 건설된 댐이다.

충북충주시 종민동과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앞계곡을 연결하여 남한강의 물줄기를 가로막은 충주댐은 높이 97.5m, 길이 447m, 체적 90만2000㎡의 댐으로서 유역면적이 6.648㎢에 이르는 거대한 댐으로 본댐 하류 19.6km 지점에는 높이 21m, 길이 480.7m, 수문20개를 가진 조정지댐을 갖추고 있다. 충주댐은 본댐의 제1발전소와 조정지댐의 제2발전소의 용량을 합치면 발전시설 용량이 41만2000kw에 달해 국내 최대의 수력발전소이며, 또한 6억 1천600만㎡의 홍수 조절 능력을 갖춰 국내 최고를 자랑한다.

충주댐은 1978년 6월 공사를 착수한 이래 8년6개월만인 1986년 10월에 완공되었는데, 이 댐이 완공됨으로서 한강인도교의 홍수위를 1m이상 저하 경감시키고 연간 33억 8천만 ㎡의 각종 용수를 공급해 경인지역과 남한강 유역권의 용수난을 해결하는 한편, 연간 8억 4천 4백만kwh의 전력을 생산, 공급하여 국가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아울러, 충주 탄금대와 중앙탑이 호수로 연결되고 본 댐에서 단양팔경까지 65km에 걸친 수상 여행길이 열려 관광자원 개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충주호 관광

충주호는 충주 다목적댐 건설로 생긴 인공호수로 충주에서 단양까지 130리 뱃길 선상관광은 국내 인공호수 중 가장 크고 깨끗함을 자랑하는 곳으로 천혜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월악산, 수안보온천, 청풍 문화재 단지, 단양팔경등과 연계되어 있는 내륙지방 제일의 관광명소이다.

양막약수터

조선 말엽에 피부병과 속병을 고친 적이 있는 샘물인 약막 약수터가 있는데, 물이 차서 땀띠에 잘 듣는다고 한다.

일향산의 일출

일향산의 일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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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화번호 043-850-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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