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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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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 목계나루 유채꽃

목계나루 유채꽃밭 남한강변 사진 엄정면 목계강변 유채꽃밭 사진
  • 개화시기 : 4월중순~5월초
  • 장소 : 충주시 엄정면 목계나루 일원(목계리 319)
  • 규모 : 80,000㎡

엄정 얼음썰매장

엄정 얼음썰매장 사진
  • 운영시기 : 겨울(기온에 따라 변동)
  • 장소(주차장) : 충주시 엄정면 미내리 218
  • 면적 4,000㎡, 썰매 200여대 대여
  • 겨울방학을 맞은 학생과 가족들에게 놀거리와 추억을 쌓기위해 주민들이 썰매장 조성

목계 별신제

목계 별신제 사진

전승지 :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별신굿은 주로 동해안 지방에서 행하여 지던 마을제의 일종으로 서울지방의 도당굿이나 전라도지방의 당산굿과 유사한 것으로 우리 충북에도 음성군, 단양군 등지에서 행하여진 기록이 있다.
1977년에 충주 우륵문화재 행사의 일환으로 목계강변에서 별신굿을 재현한 바 있다. 목계는 남한강 상류에 위치하여 육로가 발달하기 전에는 서울과 중원 지방을 잇는 한강수로의 내륙항으로서 산업의 교역이 활발한 큰 시장이 있던곳으로 지난날에는 별신제가 크게 거행되었었다. 고서에 보면 조선의 옛 풍습으로 각 지방의 시장이나 도회지에서 매년 봄 가을로 바꾸어 날짜를 잡아 성황신에게 제사를 드리니 이름하여 별신이라 한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밤낮 술마시고 놀음을 하나 관청에서 막지 못했다.
그 의식은 큰 나무를 세워 신위를 설치하고 떡, 과일, 술, 밥을 상위에 차려놓고 무당들이 모여 노래와 춤으로 서낭신을 즐겁게 했다라는 기록처럼 별신제는 년중행사인 마을수호제로서 시장의 번영과 주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제기동안에 여러 민속놀이를 통하여 주민들로 하여금 일체감을 불러 일으켜 사회생활을 협동케 하며 공동사회의 기능을 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동제를 지내면서 신의 가호를 받아왔고 공동의 축제를 통하여 건전한 민속오락을 발전시켜 왔다.

재현구성

  • 강신굿 : 목계 부흥당 앞에서 제물을 진설해 놓고 강신굿을 한 다음 농악대 두팀과 줄을 멘 줄꾼 두팀이 산 밑에 대기 하였다가 무당과 함께 강변으로 환신해 간다.
  • 영신굿 : 목계강변에 제물을 진설해 놓고 (위패는 부흥성화지신위) 무당이 영신굿을 한다.
  • 줄다리기 : 농악경연이 끝난후 각 도편장의 지휘아래 줄다리기가 행해 진다.
  • 송신굿 : 영신굿때와 같이 무당들이 강변에다 제물을 진설해 놓고 굿을 한 뒤 부흥당으로 환신을 함으로서 별신제를 마치는 것이다.

목계 줄다리기

전승지 :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줄다리기는 옛날엔 혈하희라고 해서 충청도 지방의 풍속으로 동국세시기에 기록되어 있다.
충청도 지방에서도 목계 줄다리기는 규모도 제일 크고 장관이었다고 한다.
정월 노달기 기간인 보름께부터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집단을 출염받아 먼저 아이들 줄다리기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나중에는 어른들의 줄다리기가 되는데 일자를 정해서 결승을 볼려면 2월 초순경 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목계강(남한강)을 경계로 동서편으로 나누는데 동편은 강원도 강릉까지 서편은 서울까지 사람을 동원했다 한다. 동편기는 푸른 남색기폭에 끝동은 흰 것을 달았고, 반대쪽은 빨간기폭에 노란끝동을 달았다.
동서 농악대는 이 기를 앞세우고 각각 경비조달을 위해 며칠씩 걸립을 하였는데 대장은 구군복 복색, 그리고 별감, 통인, 책질입 중복색, 여자복색등을 갖추어 복장을 하고 일자를 받은날 까지 농악놀이를 계속하였다.
1977년 충주시 지역 문화축제인 우륵문화제 행사의 일환으로 목계 강변 백사장에서 목계별신제를하면서 재현한 바가 있었는데 그때의 줄길이가 양편으로 각각 150m였고, 줄의 굵기는 지름이 150 cm 정도였다. 이 줄을 만드는데 볏짚만도 700토매(약 트럭 14대분)였고, 인력이 3만명 이상이 동원되었었다.
동편과 서편이 각각 줄을 메고 결전장인 사장으로 나갈 때는 대장은 용두위에 올라서고 농악대는 화려한 복장에 무동을 세우고 행진하는 모습이 참으로 볼 만하다. 줄은 굵은 원줄과 가지를 친 새끼줄이 여러개 있어 군정이 많아야 한다. 중앙부 용두의 높이는 사람의 키보다 높은 서편의 암줄과 동편의 숫줄을 비녀로서 고를 거는 것인데 출전 직전엔 기를 선두로 동편은 당나무에, 서편은 서낭당에 가서 먼저 치성을 드리고서야 줄을 메고 나갔다. 이때는 멀리서 까지 구경꾼이 모이고, 놀이와 함께 음식점, 난장판 등이 성대하고 며칠을 두고, 승부를 겨루는데 이긴편은 그해에 연(年)운이 좋다고 해서 또한 잔치가 벌어졌다. 줄다리기가 끝난 줄은 강변에 암줄과 숫줄을 나란히 놔 두었다가 여름 장마때 액맥이로 떠내려 보낸다. 암줄과 숫줄이 똑같이 떠내려가야 좋다는 것이다. 줄이 물에 떠내려 가는 것을 용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 줄다리기의 특색이기도 하다. 이 줄다리기는 옛날엔 3년마다 한번씩 있었는데 줄을 당기며 땅을 누르고 쇳소리를 내지 않으면 호랑이가 오고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해서 계속되어 오다가 최근 1967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앞으로 지역축제 행사에 다시 한번 재현해 보고자 각종 문헌을 참고하고 마을 노인들의 고증을 얻어 목계별신제와 함께 기록을 남겨두고 있다.

억정사대지국사비

억정사대지국사비 사진
  • 문화재지정번호 : 보물 제16호
  • 소 재 : 엄정면 비석2길 35-21
  • 시 대 : 조선시대

충주시 엄정면 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약4km쯤 가면 괴동리에 억정사라는 절터가 있다. 지금은 이곳에 대지국사비만이 우뚝 서 있으며 그 주변은 과수원이다. 화강암을 사용한 석비로 덮개돌은 없으며 비의 윗부분 양 끝 모서리의 각진 부분을 깎은 귀접이 양식을 하고 있다. 비문의 내용은 대각국사(1328~1390)의 경력과 자질, 인품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대각국사가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한찬영(韓粲英)이며 양주(楊州)사람으로서 14세에 출가하여 불법을 배우고 1350년(충정왕 2)에 승과시험에 으뜸으로 합격하였다.

그후 여러 절의 주지로 있으면서 왕의 부름을 받기도 하였지만 오래 있지는 않았고 1383년(우왕 9)에는 왕사(王師)에 책봉되기도 하였다.

창왕때에도 왕사로 있다가 공양왕때에는 억정사로 돌아와 63세로 입적하였다. '대지(大智)'는 태조 이성계가 그를 애도하기 위하여 내린 시호이며 탑명은 '지감원명(智鑑圓明)'이라 하였는데 현재 묘탑은 전하지 않고 있다

경종대왕태실

경종대왕태실 사진
  • 문화재지정번호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호
  • 소 재 : 엄정면 괴동리 산 34-1
  • 시 대 : 조선시대

억정사 대각국사비에서 북쪽으로 약 1km 떨어진 작은 봉우리에 태실이 자리하고 있다. 태실은 조선초기부터 왕자, 공주의 태를 길지에 봉인하는 제도로 풍수지리에 밝은 사람을 골라 태를 봉인하는 장소를 정하게 하였다

태는 태아의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이의 출산 후에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하였다. 특히 왕실에서는 태의 보관이 왕실의 번창과 관련이 있다고 해서 더욱 소중히 다루었다.

경종은 조선 19대 왕인 숙종과 희빈장씨 사이에 태어난 왕자로 1689년(숙종 15) 이곳에 태를 안치하였다가 1726(영조 2)에는 태실응 웅장하게 꾸미고 관리자를 십여명 정도 파견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태실의 유지와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전국의 태실을 창경궁 안으로 옮겼는데 이때 태항아리가 꺼내졌고 석물들도 흩어지게 되었다. 결국 태실비만 남게 된 것을1976년 복원 하였다.

태실의 구조는 8각 돌을 돌려 난간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8각의 하대석, 그 위에 4각의 상대석을 얹어 놓았다. 태실은 계란형이고 8각의 옥개석 위에 올려져 있다. 맨위에는 보주형을 조각하였는데이 태실은 조선시대에 널리 유형한 석종형 부도식으로 만들어졌다.

백운암철불여래좌상

백운암철불여래좌상 사진
  • 문화재지정번호 : 보물 제1527호
  • 소 재 : 엄정면 비석2길 84
  • 시 대 : 고려시대

백운암은 1886년(고종 23)에 창건된 작은 암자로 이 절에 안치된 주존불은 철불인데 전면에 금칠을 하였으나 최근에 보수작업을 거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우견편단의 여래좌상으로 나발의 머리에 육계가 있고 얼굴 표정은 근엄하다.

눈은 반쯤 뜬 모습이며 코는 큼직하고 입술은 엷고 입은 얌전히 다물고 있다. 눈 사이로 백호가 있고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으며 신체의 균형이 잘 잡혀있고 옷주름도 유연하게 표현되어 있다.

충주지역에 전하는 단호사나 대원사의 철불좌상과는 달리 단아하면서도 의젓한 모습으로 갸름하면서도 아름다운 얼굴과 늘씬한 상체가 발달된 가슴 등 고려시대의 단아한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윤민걸古家

윤민걸古家 사진
  • 문화재지정번호 : 국가지정민속자료 제135호
  • 소 재 : 엄정면 미내리 133번지
  • 시 대 : 조선시대

뒷편에는 낮은 동산이 자리하고, 앞으로는 개울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입지를 갖춘 집이다. 고종 2년(1864)에 관리를 지냈던 윤양계가 살던 집으로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한옥양식을 보이고 있다.

ㄱ자형의 안채를 중심으로 좌측으로는 행랑채가 있으며, 우측으로는 별당이 동향하여 배치되고 있다. 별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일자형 평면으로 구획하였는데 중안간과 촤측간의 전면 1칸씩을 퇴마루로, 후면은 온돌방으로 각가 만들었으며, 창호는 온돌방 사이에는 사분합 미닫이문으로, 중앙간 퇴마루 전면에는 사분합 여닫이 문으로 달았으며, 대청전.측면에는 머름중방 위에 쌍여닫이 판장문을 달았다.

구조 수법은 가공된 장대석으로 공조한 기단상에 주선중기 건축에 많이 이용한 네모뿔형 주초석을 놓고 민흘림 방형주를 세웠는데 기둥상부에는 장방형의 양봉이 건물내외 방향으로 결구 되어 데량의 하중을 단부에서 일부 보강하고 있다. 가구는 전후 평주 위에 대량과 종량을 결구하고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도록 한 오량집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는 건물이다.

추평리3층 석탑

추평리3층 석탑 사진

- 문화재지정번호 : 추평리 3층 석탑(도 유형문화재 225호)

추평리(楸坪里) 탑평(塔坪) 마을에 위치하며 탑 주변의 경작지와 인근 민가일대까지 주초석과 많은 기와들이 나오고 있다. 또한 추평리사지의 암자로 추정되는 뒤쪽 8부 능선상에도 많은 기와가 확인되고 있다.

사명(寺名)은 밝혀진 바 없으나 자기(磁器)와 고려시대 와편(瓦片)들이 상당량 출토 되고 있어 고려시대 전반기인 11세기경 축조된 탑으로 추정된다. 이 주변 사지(寺址)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엄정사(嚴政寺)’일 가능성이 크나 현재로선 확인할 수는 없다. 절터는 3층석탑이 있는 주변과 인근 민가일대까지 포함되는 약 3,000평 규모로 추정된다.

단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갖춘 ‘일반형석탑(一般型石塔)’으로 2매로 조립된 갑석(甲石) 위에 초층 탑신이 안정감있게 올려지고 탑신의 양쪽에 우주(隅柱)가 정연하게 모각(模刻)되었다. 낙수면은 급하며 옥개(屋蓋)에는 전각(轉角)의 반전이 있으며 탑신괴임은 생략되었다. 옥개의 양쪽 끝에는 풍경원공의 흔적이 또렷하고 층급받침은 모두 4단이다. 상륜부에는 복발(覆鉢)로 보이는 부재(部材)가 남아 있다.
탑은 단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갖춘 일반형의 석탑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3층 까지 남아 있다.

충주 추평리삼층석탑은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고려시대에 건조된 일반형 석탑 으로 주변일대에서 수습되는 자기(磁器)와 와편(瓦片)으로 보아 고려조에 번창했던 사찰(寺刹)로 추정되며 탑신(塔身)의 우주(隅柱)표현, 전각(轉角)의 반전으로 보아 신라시대 양식을 이어 받으면서 다소 변형된 고려초기 탑의 양식을 고찰할 수 있는 석탑으로 보존가치가 높다.

충주 도자기 마을

충주 도자기 마을 사진
  • 소 재 :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211-21 탄방마을 일원
  • 공 방
    • 국원예가, 서현요 : 043)855-6447
    • 원광도자기 : 043)852-6235
    • 윤두리공방 : 043)855-6267
    • 토허가마 : 043)857-6447
    • 도예공방진 : 043)855-4131
    ※ 이외에 윤길동목공예, 해너울공방 등 소재

산 좋고 물 좋은 고장 충주! 청정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충주의 농촌마을에 조금은 특별한 마을이 있다.

알록달록 꾸며진 입구를 지나면 도예공방을 알리는 예쁜 표지판이 보인다. 이 마을로 들어가면 도예인들이 창작활동을 하면서 직접 판매도 하며, 마을을 찾은 관광객이 도예체험을 할 수 있도록 체험장도 마련되어 있다.

전통의 방식으로 그릇을 구워내는 흙가마에서부터 그 안에서 탄생되어 공방 한 켠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릇에 이르기까지 관광객의 시선을 이끄는 이곳은 지역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는 테마마을, 「충주 도자기 마을」이다.

담당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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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엄정면 전병우
  • 전화번호 043-850-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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