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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탄금대

  • 주소 :충주시 탄금대안길 6-4
  • 문의 :탄금공원관리사무소 (043) 848-2246
  • 홈페이지 :
  • 편의시설
    • 수유실
    • 유모차
    • 자전거
    • 와이파이
    • 주차시설
    • 애완동물
    • 휠체어

소개

탄금대 이미지

추억을 심어주는 명승지 탄금대 - 충주에서 서북쪽으로 3km 지점에 충주사람들에게 추억을 심어주는 명승지 탄금대가 있다.

충주에서 서북쪽으로 3km 지점에 충주사람들에게 추억을 심어주는 명승지 탄금대가 있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탄금대 북쪽으로 유유히 흐르고 속리산에서 발원한 달천강이 한강과 합수되는 지점에 자리한 탄금대는 대문산, 견문산이라 부르기도 하는 해발 100m 정도의 나즈막한 산이다. 악성 우륵이 망국의 한을 달래며 가야금을 타면서 제자들에게 노래와 가야금, 춤을 가르쳤다는 곳이며, 임진왜란 때 팔도 순변사 신립장군이 순절한 곳이기도 하며, 야외음악당과 궁도장이 있다.

탄금정

2층 누각형태인 탄금정은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정자로 본래 충주관아 내 연못에 천운정이란 정자가 있던 것을 사직산에 지건되었다가, 1955년 다시 이 자리로 이건되었는데, 목조로 된 정자가 낡고 헐어 지금 이 정자를 건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강쪽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탄금대에서도 가장 절경인 열두 대에 이른다. 유유히 흐르던 강물은 질펀하게 호반이 되어 물안개를 일으키고, 서번 박재륜 선생의 글에 죽사 박충식선생의 글씨로 세운 '신립장군 순국지기"비가 외롭게 서 있다.

탄금정 이미지

열두대(남한강변 절벽)

임진왜란 때 팔도 도순변사 신립장군이 조총으로 무장된 십수만의 왜적을 창과 활로 무장한 훈련되지 않은 팔천 군사와 함께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려면 배수진 전법이 아니면 불가하다는 전략을 세우고, 이곳 열두 대에서 병사들과 함께 싸우다 47세를 일기로 애석하게 순절한 곳이다. 부여의 낙화암이 금강변에 있듯이 탄금대 열두대가 남한강변에서 분위기를 갖게 한다. 열두 대란 가야금이 12현 열두줄이기에 "열두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고, 또다른 하나는 신립장군이 왜병과의 전투에서 군사들을 독전하면서 열기에 달아오른 활시위를 강물에 식히려고 이 대(절벽)를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는 전설이 숨어 있기도 한 곳이다. 이 곳 열두대를 오르내리는 지금의 콘크리트 계단을 12단으로 만든 것도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감자꽃 노래비 이미지

감자꽃 노래비

일제시대인 1930∼40년대 충주가 배출한 아동문학가 권태응 시인의 시비에 새겨진 <감자꽃> 전문이다. 아이들이 부르는 평범하고 짧은 노래지만 한국 사람은 한국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항일정신을 담고 있는 저항 시로도 읽힌다.

자주꽃 핀건 자주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꽃 핀건 하얀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감자


유적지 정보

  • 시 대 : 조선
  • 유 형 : 사지
  • 지 정 : 기념물
  • 지정번호 : 명승 제42호
  • 지정일자 : 2007.7.9

충주탄금대 이미지

신립장군의 혼이 깃든 충주탄금대 - 신라 진흥왕때에 악성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탄주하던 곳이라고 해서 탄금대라고 불리워졌다.

탄금대는 원래 대문산이라고 불리워 오던 작은 산으로 그 밑에는 남한강과 면서도 기암절벽에 송림이 우거져서 경치가 좋은곳이다.
지금부터 1400여년전(AD 536년경) 신라 진흥왕 때에 악성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탄주하던 곳이라고 해서 탄금대라고 불리워졌다. 우륵선생은 가야국 가슬왕 당시의 사람으로 가야국의 멸망을 예견하고 신라에 귀화하니 진흥왕이 기뻐하여 우륵을 충주에 거주케 하며 신라청년 중에서 법지, 계고, 만덕에게는 춤을 수습시켜 우륵을 보호케 하였으며 우륵선생은 항상 산상대석에 앉아 가야금을 탄주하였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순변사 신립장군이 휘하장병 8천여명을 거느리고 배수진을 치고 왜장 소서행장을 맞아 격전끝에 전운이 불리하여 참패하게 되자 장강백파에 투신 순국한 전적지로 유명하며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에 100척이나 되는 절벽 열두대라는 곳이 있는데 신립장군이 전시에 열두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시어 쏘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였다 하여 열두대라고 한다.
탄금대에는 현재 충주문화원, 야외음악당, 충혼탑, 감자꽃노래비, 탄금정, 탄금대기비, 악성우륵선생추모비, 신립장군순절비, 조웅장군기적비, 궁도장, 대흥사 등이 있고 조각공원과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탄금대는 원래 대문산이라고불리워 오던 작은 산으로 그 밑에는 남한강과 면서도 기암절벽에 송림이 우거져서 경치가 좋은곳이다.

지금부터 1400여년전(AD 536년경) 신라 진흥왕때에 악성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탄주하던 곳이라고 해서 탄금대라고 불리워졌다. 우륵선생은 가야국 가슬왕 당시의 사람으로 가야국의 멸망을 예견하고 신라에 귀화하니 진흥왕이 기뻐하여 우륵을 충주에 거주케 하며 신라청년 중에서 법지, 계고, 만덕에게는 춤을 수습시켜 우륵을 보호케 하였으며 우륵선생은 항상 산상대석에 앉아 가야금을 탄주하였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순변사 신립장군이 휘하장병 8천여명을 거느리고 배수진을 치고 왜장 소서행장을 맞아 격전끝에 전운이 불리하여 참패하게 되자 장강백파에 투신 순국한 전적지로 유명하며 탄금대 북쪽 남한강 언덕에 100척이나 되는 절벽 열두대라는 곳이 있는데 신립장군이 전시에 열두번이나 오르내리며 활줄을 물에 적시어 쏘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였다 하여 열두대라고 한다.

탄금대에는 현재 충주문화원, 야외음악당, 충혼탑, 감자꽃노래비, 탄금정, 탄금대기비, 악성우륵선생추모비, 신립장군순절비, 조웅장군기적비, 궁도장, 대흥사 등이 있고 조각공원과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최근 탄금대토성에 대한 발굴조사결과 삼국시대 백제세력에 의해 축조된 토성으로 밝혀져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찾아오시는 길

  • 충주IC → 충주방면(3번지방도) → 제천방면(19국도,달천사거리 좌회전) → 롯데마트사거리(좌회전) → 탄금대공원

오시는길

담당자 정보

담당자 정보

  • 담당부서 관광과 조희연
  • 전화번호 043-850-6723
  • 최종수정일 201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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