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보각국사

>  문화와 역사 >  역사인물 > 보각국사
 보각국사 사진1

보각국사

  • 시대 :고려시대
  • 출생사망 :1320~1392

인물소개

보각국사는 고려말기 충주의 청룡사를 중심으로 하여 동량면 개천사의 주지 등을 맡아 선종의 높은 법리를 펴다가 말년에는 청룡사의 연회암에서 입적한 대선사이다.
국사는 22세에 승과 선종선에 급제하고 금강산에 들어가 공부하였으며, 1383년에는 국사에 책봉되고 충주 개천사의 주지가 되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축하표문을 올린 후, 청룡사로 와서 연회암을 짓고 머무르다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청룡사 연회암에서 불경간행에 힘을 기울였는데, 당시 간행된 불교서적으로「선림보훈(보물 제700호)」,「금강반야경소론찬요조현록(보물 제720호)」「호법론(보물 제702호)」「선종영가집(보물 641호)」등이 있다. 한 사찰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서적을 간행한 사실은 드문 경우로, 청룡사 간행본은 충주의 불교문화와 인쇄문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된다.
국사의 선종 후 태조의 명으로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번지 청룡사지에 부도가 건립되었는데 보각국사 정혜원륭탑이라 칭하였다. 탑비는 2년 후인 1394년에 건립하였는데, 양촌 권근이 비문을 짓고 글씨는 승려 천택이 썼다. 정혜원륭탑은 국보 제197호, 정혜원륭탑비는 보물 제658호, 탑 앞에 있는 사자석등은 보물 656호로 지정되어 있다.

담당자 정보

담당자 정보

  • 담당부서 관광과
  • 전화번호 043-850-6724
  • 최종수정일 2016.08.04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