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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경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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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경대사 사진1

법경대사

  • 시대 :통일신라
  • 출생사망 :879~ 941

인물소개

법경대사는 통일신라 하대에 태어나 혼란스런 후삼국기를 거쳐 고려 초기를 살다간 승려이다. 27세에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으며, 46세에 귀국하였다. 귀국 당시 태조 왕건은 대사에게 특사를 보내어 영접하게하고 국사의 예로 대하였으며, 충주 정토사에 머물도록 요청하였다. 교통의 요충지이자 친고려적인 충주지역에 대사를 머물게 함으로써 좀 더 확실하게 충주지역의 민심을 안정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대사는 신라하대에 유행한 선종을 수용하면서도 계율을 중시하여 선종의 입장에서 교종을 포용하려는 입장을 취하였다. 왕건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왕건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인 충주 정토사에서 만년을 보냈다. 그러면서 충주의 유력세력인 충주유씨와도 연관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대사가 충주에 머물면서 설법을 하게 되자, 사방에서 군중이 모여들어 모당(茅堂)을 가득 메워 그 수가 백천이나 되었다고 하니, 대사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대사가 입적하자 제자 300여명이 유해를 받들고 개천산 북봉 남쪽 기슭에 장사지냈다. 대사의 입적 소식을 들은 왕건은 크게 슬펴하며, ‘법경’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명을 ‘慈燈之塔’이라 하였으며 직접 전액을 써서 애통함을 표현하였다.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177-6번지에 있다.

담당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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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관광과
  • 전화번호 043-850-6724
  • 최종수정일 201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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