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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회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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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회 박사 사진1

허문회 박사

  • 시대 :현대
  • 출생사망 :1927~2010

인물소개

통일벼의 아버지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쌀이 부족해 굶는 일은 없다. 그러나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쌀이 많이 부족하여 쌀을 자급하는 일은 국가의 최우선 정책과제였다. 당시 유행하던 ‘보릿고개’라는 말은 식량이 매우 곤궁했던 기간을 일컫는다. 이 보릿고개를 해결하고 쌀의 자급을 가능케 했던 것이 바로 통일벼이다.

이 통일벼를 개발한 분이 바로 충주 소태면 출신 허문회 박사이다. 1960년부터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로 근무하던 허문회 교수는 당시 식량부족의 해결책은 품종개량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생산성이 높은 벼 품종 개발을 계획했다. 이를 위해 1962년 필리핀에 설립된 국제미작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에서 1964년부터 2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생산성이 높은 품종 개발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1971년에 ‘통일벼’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고, 1972년부터는 농가에 보급되어 재배되기 시작했다. 병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통일벼 개발에 성공하여 우리 국민이 보릿고개를 탈피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공로로 2010년에는 교육부 및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29번째 인물로 선정되었다. 선생은 2010년 11월 24일 83세를 일기로 서거하시여 충주시 목행동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담당자 정보

담당자 정보

  • 담당부서 관광과
  • 전화번호 043-850-6724
  • 최종수정일 201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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