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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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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 사진1
이수일 사진2

이수일

  • 시대 :조선시대
  • 출생사망 :1554~1632

인물소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순(季純), 호는 은암(隱庵).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월성부원군 이난(李鸞)이고, 어머니는 참봉을 지낸 우담령(禹聃齡)의 딸 단양우씨이다. 아들은 효종 때 우의정을 역임하고 송시열(宋時烈)과 함께 북벌을 추진했던 이완(李浣)이다. 1554년(명종 9) 충주에서 태어난 이수일(李守一)은 1583년(선조 16) 별시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84년 권지훈련원봉사 등을 거쳐 장기현감으로 재직 중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장기현을 공격하는 왜군과 격전 끝에 왜군을 죽인 공을 인정받아 통정대부에 올랐다. 1593년 밀양도호부사로 경상좌도수군첨절제사가 되어 울산에서 왜군을 격퇴한 공으로 경상좌도수군절도사로 승진하였다. 1593년 회령도호부사 재직 중에 정유재란이 일어나 왜군이 전라도 쪽으로 진격하자 성주목사가 되어 대구의 김응서, 밀양의 이영과 협력하여 왜군에 대항하여 싸웠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1600년(선조 33) 4월 북병사겸경성도호부사로 있으면서 여진족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1603년(선조 36) 8월 경상우병사겸진주목사가 되어 우병영을 창원에서 진주의 촉석산성으로 옮기고 임진왜란으로 허물어진 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하였고, 1605년에는 길주목사에 임명되어 길주산성을 축조하였다. 이후 수원부사, 북병사겸경성도호부사, 지중추부사·, 평안도병마수군절도사겸영변대도호부사, 충장위장를 거치고 1615년 다시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616년 9월 역적 이춘기 등을 체포한 공로로 숭정대부에 오르고 1617년 다시 북병사겸경성도호부사에 임명되었고 1618년 숭록대부에 올랐다. 1624년 평안병사겸삼도부원수로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진무공신 2등에 올랐으며, 삼도통제사겸경상우수사를 거쳐 1628년 형조판서겸금화제조주사대장에 임명되었다. 1631년(인조 9) 77세의 고령으로 남한산성수어사에 임명되어 남한산성 수축의 감독을 맡았다. 1632년 노령으로 관직을 사직한지 한 달 만에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묘는 충주시 금가면 오석리에 있으며, 충청북도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었다.

담당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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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예술과 남금자
  • 전화번호 043-850-5980
  • 최종수정일 202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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