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사, 단호사, 백운암의 철조여래좌상
충주에서 만나는 고려의 얼굴
대원사, 단호사, 백운암의 철조여래 좌상
충주에 가면 단호사 철조여래좌상,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충주 철조여래좌상 등 보물로 지정된 불상 세 개를 볼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철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차갑고 날카로운 철도 불상으로 다시 태어나니 따듯하게 느껴진다.

소개

철의 왕국, 충주의 철조여래좌상
충주 시내에서 앙성면으로 가다가 앙성면 소재지 가기 전에 오른쪽 길로 들어가면 ‘풀무골’이라는 마을이 나온다. 노은면 수룡리에는 ‘무쇠점마을’이 있다. 노은면 법동리 점터마을 앞은 ‘쇠똥배기’ 라고 부른다. 수안보면 미륵리 만수계곡에서 만수봉으로 올라가다 보면 마문리 ‘쇠부리터’라는 지명이 있다. 충주 시내에서 탄금교를 건너 조금 가다 보면 창동리 ‘쇠꼬지’가 나온다. 지금은 폐광 되었지만 얼마 전까지 이곳에서 철이 생산되었다. 이 모든 이름은 철과 관련 있다
충주는 질 좋은 철을 생산하던 고장이다. 충주에서 확인된 야철지는 중앙탑면 2곳, 노은면 14곳, 수안보면 4곳, 앙성면 1곳, 대소원면 43곳 등이다. 야철지 64곳 가운데 53곳이 고려 시대 것으로 밝혀졌다. 충주는 철의 왕국이자, 고려 시대 주요 철 생산지였다. 충주에 철조여래좌상이 많은 것도 이와 관련 있는 일이다. 철로 만든 불상은 흔히 볼 수 없는데, 충주에는 보물로 지정된 철조 여래좌상이 세 개 있다. 단호사 철조여래좌상,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충주 철조여래좌상이 그것이다.
충주 철조여래좌상(보물 98호)은 11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보물 512호) 또한 11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 좌상(보물 1527호)은 제작 시기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 충주문화관광포털에 따르면 12세기에 만들어졌지만, 백운암에 있는 안내판에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만들어졌다고 나온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도 조성 연대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 1충주 철조여래좌상
- 2단호사 철조여래좌상
불상의 얼굴
불상은 전체적으로 비슷하게 보이지만, 신체의 비례나 얼굴 표정, 옷의 표현 방식 등이 다르다. 신체 비례로 보면 충주 철조여래좌상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이 비슷하다. 몸에 비해 얼굴이 크다.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은 몸과 얼굴 크기가 조화롭다. 옷을 표현한 방식도 충주 철조여래좌상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이 비슷하다. 두 불상에 새겨진 옷의 형태는 목 아래로 늘어진 ‘U’자다. 반면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은 한쪽 어깨는 드러내고, 다른 한쪽 어깨에 옷을 걸친 형태다.
얼굴 표정은 세 불상이 모두 다르다. 단호사 철조여래좌상은 코와 입에 비해 눈을 크게 표현했다. 눈을 지그시 감은 듯 보이는데 눈꼬리는 올라갔다. 광대와 하관이 홀쭉해 일반적인 불상의 온화한 표정을 찾아볼 수 없다. 전체적으로 근엄한 표정이다. 충주 철조여래좌상은 단호사 철조여래 좌상과 비교할 때 눈 코 입의 크기가 비교적 조화롭고 온화한 느낌이다.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은 다른 두 불상과 사뭇 다른 표정이다. 눈 코 입의 균형과 비례가 잘 맞고 온화한 표정과 부드러운 미소가 특징이다.

불상에 얽힌 이야기
대원사는 충주시 지현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절이다. 충주 철조여래좌상은 대원사 극락전에 있다. 충주공고 옆 노천에 방치된 것을 옛 중원군청으로 옮겼다가, 1959년 대원사로 옮겼다. 불상은 한 면의 길이 97cm, 높이 65cm 화강암 탑신석 위에 안치됐다.
단호사 또한 충주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절이다. 단호사 철조여래좌상은 1945년까지 지금의 자리에 방치되었는데, 한 스님이 철조여래좌상이 있는 곳에 절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불상은 처음에 금불상으로 알고 있다가 1968년에 철조여래좌상으로 밝혀졌다. 철에 도금한 것이었다.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에는 명성황후와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명성황후는 충주로 피신했다. 이때 한 무당이 명성황후가 곧 궁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예언했고, 무당의 예언대로 명성황후는 환궁하게 됐다. 1886년 명성황후는 그 무당에게 진령군 이라는 작호를 내렸다. 여자의 신분으로 대감이 된 무당의 꿈에 철조여래좌상이 나타나 지금 절이 있는 자리에 안치해달라고 해서 그 자리에 절을 짓고, 백운암이라 했다고 한다


- 1철조여래좌상이 있는 단호사 대웅전
- 2철조여래좌상이 있는 대원사 극락전
철조여래좌상이 있는 작은 절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이 있는 대웅전 앞마당 가에 할미꽃과 금낭화가 피었다. 붉은빛 금낭화가 단아하고 고혹한 자태로 여행자를 반긴다. 절 마당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마당 주변에는 할머니의 흰 머리카락을 닮은 할미꽃이 무리 지어 피었다. 처연하게 아름다운 할미꽃을 보다가 금낭화를 보면 할머니의 품에서 마냥 행복한 손녀 같다
충주 철조여래좌상이 있는 대원사 극락전 앞에는 작은 불상이 놓였다. 여염집 수돗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무 대야에서 연이 자라고 있다.
단호사 철조여래좌상이 있는 대웅전 앞에는 기괴하게 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조선 초기에 심었다는데, 굵은 소나무 가지가 비틀리고 굽이치는 모양이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다. 소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적은 비석이 눈에 띈다.
돈은 많으나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강원도 사람이 어느 날 집에 찾아온 노인에게 충주 단월 지방에 있는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면 득남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에 단호사를 찾은 그 사람은 절에 불당을 짓고 불공을 드렸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던 그 사람은 절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불공을 드리는 마음과 같이 지극정성으로 소나무를 돌봤다.
어느 날 고향 집 마당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고 안방에 부처님을 모셔놓은 꿈을 꾸었다. 기이한 것은 그 사람의 부인도 같은 날 꿈을 꾸었는데, 단호사 법당이 자기 집 안방으로 바뀌어 보였다. 부인은 남편이 있는 단호사를 찾아가 함께 살며 기도드리라는 암시라 생각하고 그 길로 단호사에 갔다. 함께 살던 부부에게 태기가 생겼고 아이를 얻었다
소나무 아래 석탑이 하나 보인다. 충주 단호사 삼층석탑(충북유형문화재 69호)은 고려 중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추천! 하루여행코스
- 출발
- 대원사
- 단호사
- 충주세계무술공원
- 탄금대
- 백운암
오시는길
여행정보
대중교통 |
|
---|---|
자가운전 |
|
맛집 |
|
숙소 |
|
안내
- 단호사 : 충주시 충원대로 201. Tel.043)851-7879
- 백운암 : 엄정면 내창로 617-80. Tel.043)857-3414
- 대원사 : 충주시 사직산12길 55. Tel.043)847-4059
- 충주문화관광포털 (http://www.chungju.go.kr/tour/index.do)
- 문화재청 (www.cha.go.kr)
- <충주시지>
- 각 사찰 안내판